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성장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하며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지만 빠르게 변모하는 상업주의에 가치를 내어주는 실정이다. 5천 년 역사의 우리 고전문학은 별개로 하더라도 한국의 현대문학은 1908년 ‘소년’ 창간호에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효시로 본다. 110년의 짧은 역사이지만 한국문학의 수준은 매우 우수하다는 평이다. 최단기간 내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취한 한민족의 자부심이 문학에도 배어 있다. 그럼에도 노벨문학상 등 수상자가 없는 것은 우수작품 번역미비, 세계 독서 출판시장에의 홍보 부족,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부족이 원인이라고 꼽힌다. 매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의뢰받아 노벨문학상을 추천하는 국제PEN한국본부에서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손해일 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으로부터 문인의 사명을 들어봤다
문인의 사명
모든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시의 역할도 특히 인간의 고차원적 표현 욕구와 카타르시스 기능, 교훈적 기능을 들 수 있습니다. 시가 생존의 필수품은 아니지만 인간의 생활을 윤택케 하는 빛과 소금 역할로 조미료라나 양념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시삼백(詩三百) 사무사(思無邪)”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혜안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시인은 시대를 앞서가는 촉각으로 세상을 밝히는 등대이며, 조잡한 언어의 광물덩이에서 보석을 빚어내는 연금술사입니다. 수없는 단금질과 풀무질로 명검을 벼리는 언어의 도검장입니다.
그러자면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배격하는 올곧은 선비정신과 투철한 장인정신이 필수라고 봅니다
국제PEN과 국제PEN한국본부 소개
세계 유일의 국제 문학단체인 PEN은 1921년 영국 런던에서 여류 소설가 도슨스코트의 제창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골즈워디를 초대회장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세계 문인들의 친선 교류, 표현의 자유, 소수 언어 보존, 여성인권 신장 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런던 PEN본부에 투옥작가위원회, 여성작가위원회, 언어보존위원회, 평화위원회 등 4개 분과가 있고, 전 세계에 154개 펜지부(센터)가 있으며, 매년 1회 세계PEN총회도 개최합니다.
한국도 그중 하나이며 세계PEN총회를 3차례나 개최 한 바 있습니다. PEN은 P(poet, playwright), E(essayist, editer), N(novelist)의 이니셜은 딴 것입니다.
한국PEN은 6.25직후의 폐허 속에서 1954년에 창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인단체인데 1955년 세계PEN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습니다. 정식으로 인준받기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지원과 모윤숙 선생의 공이 컸다고 합니다. 창립 이래 초대 회장 변영로 선생부터 정인섭, 주요섭, 모윤숙, 백철, 전숙희, 문덕수, 김시철, 성기조(이사장으로 개칭), 문효치, 이길원, 이상문 이사장을 거쳐 제가 13번째인 제35대 이사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이사장의 임기는 4년이며, 부이사장 5명을 런닝 메이트로 하여 회원들의 직접 우편투표로 선출합니다. 정회원 자격은 등단 5년 이상, 자기 저서 한 권 이상인데, 현재 약 3,800명 회원입니다. 특기사항은 매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의뢰받아 노벨문학상을 추천한다는 점입니다.
등단 과정과 시인으로서 그간의 작품 활동
1948년 남원에서 태어난 저는 학창 시절 오랜 습작기를 거쳐 1978년 월간 ‘시문학’ 6월 호에 문덕수, 이석 선생의 추천으로 추천 완료작 ‘빛을 위한 탄주’로 등단했습니다.
월간 ‘시문학’지는 ‘현대문학’ 자매지로 1971년 창간된 국내 몇 안되는 최장수 시전문 월간지입니다.
지금은 문학지나 매체가 많고 문인 등단 절차도 쉬워졌지만 당시는 추천제로서 등단에 보통 2~3년이 소요되었지요. 등단 후 40년간 저의 작품 세계를 평론가들은 초기는 서정시 중기를 역사의식의 천착, 후기에는 현대적 하이퍼 풍자시로 나눕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데뷔작인 ‘빛을 위한 탄주’, 백제 王仁박사 도일 행적을 취재해 10년이 걸린 서사시 ‘왕인의 달’, 일본 히로시마 원폭을 취재한 500행 다큐멘터리 장시 ‘그날의 핵십자가’, 하이퍼 풍자시 ‘떴다방 까치집’ 등입니다.
최근에는 물고기 연작시 ‘新자산어보’를 발간했습니다. 대체로 시가 엄숙해 유사 도덕 교과 서류가 되거나 개인적인 낭만 과잉으로 식상함을 배제하고 저는 재미와 교훈과 지식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지적인 ‘다큐포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시 쓰기란 고통이면서 즐거움인 인생의 활력소’로서 신앙과도 같습니다.
인생에서 잘한 일 세 가지 정도를 꼽는다면
첫째는 문학, 특히 시인으로 등단한 일입니다. 34년간 직장인으로도 충실했지만 퇴직 후에도 정년 없이 창작을 한다는 행복과 성취감이 큽니다. 두 번째는 1975년 서울농대를 졸업 후 34년간 한 직장에 재직하면서도 일선 농촌 근무, 리서치 업무, 은행 지점장, 대학교수, 신문사 편집국장 등 다양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재직 중 1983년부터는 전공을 바꾸어 홍익대학에서 석,박사과정 8년간 주경야독으로 문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명예롭기도 하지만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기르며 창작과 이론을 겸비하게 된 바탕이 되었지요.
세번째로는 1981년 결혼 후 어려운 가운데도 부모님과 장모님까지 세분을 한 집에 모시고 21년간을 함께 한 일입니다. 대단한 효자는 아니지만 살면서 인간적인 도리를 다했다는 자부심과 위안 같은 게 있어요. 물론 심성 고운 아내의 내조 덕이 커서 늘 고맙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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